사회 시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히치콕의 여인 조안 폰테인 원수가 된 사연

명가공인 2014. 8. 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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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생으로 1935년도 부터 영화계에 첫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아름다운 여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Olivia De Havilland)는 무려 4번의 아카데미 상을 수상을 하였고 1977년도의 영화였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배우로도 유명하죠.

아울러 그녀의 한살 어린 동생이였던 조안 폰테인 (Joan Fontaine)의 경우도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더불어 미모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더불어 명감독 히치콕의 여인으로도 유명했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안 폰테인 역시도 1935년도 부터 영화계에 입문을 하긴 하였으나 크게 빛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가 1940년도에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에서 주연을 맡게 되었고 이후 다시 히치콕 감독의 서스픽션의 주연을 맡게 되면서 부터 일약 스타로 성장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 올리비아 드 하필랜드, 조안 폰테인 두 자매가 원수가 된 사연은?


우선 이 것이 정설이 아닌 저도 카더라 통신을 통해서 얻어낸 정보이니 만큼 정확한 정보가 아닌 추측이 일부 섞여 있음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Olivia De Havilland)


우선 두 사람의 데뷔와 수상 내역을 먼저 살펴 봐야 할텐데요.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에 비해서 그녀 보다 한살 어린 여동생인 조안 폰테인 (Joan Fontaine)은 수상경력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조안 폰테인 (Joan Fontaine)


1941년도에 제7회 뉴욕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을 수상을 하였고 1942년도에는 영화 서스픽션으로 인해서 제14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을 하게 됩니다.발단은 바로 이 서스픽션으로 인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 발단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해 보이는 듯 합니다.


올리비아가 '홀드 백 더 돈(Hold Back The Dawn)'으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을때 역시도 1941년도 였으나 조안 폰테인이 먼저 '서스픽션'으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된 것이죠.

히치콕의 여인 조안 폰테인 (Joan Fontaine)


조안 폰테인은 살아생전 언니에 관해서 이런 인터뷰를 했다고 하더군요.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모든걸 자신이 먼저해야 했다. 결혼도 먼저 하고, 아카데미상도 먼저 타고, 아이도 먼저 낳고, 심지어 내가 먼저 죽으면 그녀가 분노했을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언니라고 하면 양보를 좀 해 주면 좋았을 텐데 전혀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나 봅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즉 모든 것을 동생보다도 먼저 했어야 하는데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어 줄 아카데미여우주연상을 동생이 먼저 받게 되었으니 동생을 더욱더 미워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Olivia De Havilland)


사람은 정말 외모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될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거듭 해 보게 됩니다.

보기에는 전혀 그럴것 같아 보이지 않는 아름답고 청순해 보이는 외모를 지닌 올리비아가 뭐든 먼저해야만 하는 집착이 상당했다는 것은 좀 공포스럽기 까지 합니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Olivia De Havilland)


동생인 조안 포테인은 지난해인 2013년 12월 15일 이미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혹여라도 아직까지도 올리비아가 동생보다 뭐든 먼저 해야만 한다는 집착이 있다고 하면 이제는 그런 집착은 벗어 버리고 남은 여생을 심리적 굴레에서 벗어나서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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