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사

미국 전쟁영웅 조지 패튼 장군 사망 음모설, 아이젠하워와 관련 있었나?

명가공인 2014. 8. 2. 23:22
반응형

미국의 4대 전쟁영웅으로 불리울 만큼 전쟁에서 만큼은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조지 패튼 장군...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승자에게 유리하게 기록으로 남을 수 밖에는 없기에 귀족적이고 거만하고 전쟁광이라 불리울 만큼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조지 패튼 장군을 지금의 역사가 위대한 장군으로 평가를 할 수가 있는 것은 일단은 과정보다는 그가 전쟁에 나가면 승리를 이끌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전쟁영웅의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부터 검술과 승마를 즐겼던 그는 어쩌면 전쟁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호전적인 사람이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워낙에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서 자신보다 6살이나 어렸던 육사 후배였던 연합군총사령관이였던 아이젠하워보다도 진급이 느렸었다고 하니 괴팍한 성격이 어느 정도 였는지는 짐작을 해 보실 수가 있을 듯 합니다.


 ■ 전쟁영웅 조지 패튼 장군 그리고 허무한 교통사고 사망



조지 패튼 장군은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군 참전이 결정되자 원정군 사령관이 된 퍼싱 장군의 발탁으로 미군 최초의 기갑부대 지휘관이 된 이후 속전속결의 기존전의 신봉자가 됩니다.

이후 2차대전때에도 역시 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연합군에게 무참히 패배를 하며 조롱을 당하던 미군의 기갑부대 사령관으로 부임한 이후로는 기갑부대를 180도로 탈바꿈 시켜서 아프리카 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전쟁광이였던 조지 패튼 장군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는 직접 격려를 해 주는 것으로도 유명 하지만 전쟁을 두려워 하는 자들에게는 전쟁광 답게 인정사정을 보이지 않는 행동들로 인해서 구설수에 많이 오르내리게 됩니다.

급기아 1943년도에는 전투신경증에 걸려서 병원에 있던 병사를 멀쩡해 보이는데 병원에 있다는 이유로 폭행을 한 사실이 드러나 공식적인 사과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일파만파 번지게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죠.

요즘 같으면 관심병사를 사령관이 와서 두들겨 패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 발생을 했던 것이죠.


여튼 거침없는 언행과 맘에 안들면 병사들을 두들겨 패 버릴 정도로 전쟁에 열정을 보였던 조지 패튼 장군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독일 바이에른 지역 군정 사령관으로 임명이 되기도 하였으나 전쟁 만큼이나 정치적인 행보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전후 패튼은 연합국들이 독일에서 벌인 탈나치화 정책에 공공연히 반대하다가 1945년 10월 제3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고 미국으로 복귀하기 하루전인 같은해 12월 9일 1939년식 캐딜락을 타고 교회로 꿩사냥을 나갔다가 복귀하는 길에 트럭에 치이면서 이 사고로 목뼈가 부러졌고, 12일 뒤인 12월 21일 결국 색전증으로 인해 60세의 나이로 하이델베르크 군병원에서 전쟁이 끝난지 고작 7달 만에 사망을 하게 됩니다.


조지 패튼 장군이 교통사고가 난 것에 대해서는 음모론이 있기는 하던데 어떤 이유로 그가 미국으로 복귀하기 하루전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없는 듯 합니다.


아이젠하워


일각에서는 패튼이 미국으로 복귀를 할 경우 높은 인지도로 인해서 2차대전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을 맡았고 미국의 42.43대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의 정치인생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하여 하이젠하워가 사주를 한 것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음모론 역시도 증명이 된 것이 없다 보니 그냥 가설일 뿐 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