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사

장쉐량 쑹메이링 때문에 시안사건때 장제스를 살려줬던 사연

명가공인 2014. 10. 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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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2월 12일 밤 중국의 시안교외 화칭츠에서 총성이 울리며 중국역사와 2차대전의 판도마져 바꾸데 된 중요한 사건이 발생을 하게 됩니다. 일변 시안사건이라 불리우는 이 사건은 당시 중국 국민당을 이끌고 있었던 장제스에 이은 제 2인자인 장쉐량에 의해서 주도가 된 사건이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발생한 이 시안사건에서 장제스는 장쉐량에 의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였으나 쑹메이링이라고 하는 한 여인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가 있게 되었는데요.

사랑때문에 역사가 뒤바뀐 사건인 장쉐랑 쑹메이링에 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나마 해 보고 자 합니다.


 ■ 시안사건의 장쉐랑 그리고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


장쉐량


▷ 장쉐량의 시안사건과 2차 국공합작

시안사건이 발생하기전인 1931년 일본군은 만주를 침공을 하였고 당시 동북군 사령관이였던 장쉐량은 장제스의 지시에 따라 그곳을 포기하고 대신 마오쩌뚱의 홍군을 소탕하도록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에 지속적인 불만을 품고 있었던 장쉐량은 결국 1936년 12월 국민당 최고 통치권자인 장제스를 인질로 삼아 5년전 동북을 점령한 일본과의 전쟁을 촉구하며 2차 국공 합작을 요구하게 됩니다.

장제스


2차 국공합작이라고 하는 용어로 하니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추가적으로 설명을 드리자면 국민당과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단하고 항일운동을 벌이기 위해서 서로 연합을 했던 것을 의미 합니다.

이로 인해서 국민당은 당시 불법화 했던 공산당을 합법화 했고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등 시안사건으로 인해서 중국 역사는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만약 이 장쉐랑이 일으킨 시안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면 지금의 중국공산당은 아마 없었을 지도 모를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 장쉐량 쑹메이링을 위해서 장제스를 살려주다

만약 장제스는 쑹메이링이라고 하는 여인이 없었다고 한다면 아마도 역시 역사는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쑹메이링 하면 언듯 누구지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집안 내력을 살펴보면 엄청난 집안이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는데요.

쑹메이링


먼저 쑹메이링의 첫번째 언니는 중국 산시성 최대 금융부호였던 쿵샹시의 아니였고 둘째 어니는 중국의 잔다르크로 불리우는 쑹칭링으로 국민당 창시자인 쑨원의 아내였으며 마지막으로 쑹메이링은 장제스의 부인이이였습니다.

쑹칭링과 쑹메이링 자매, 사상이 서로 달렸던 이 둘은 서로 죽을때 까지 안보고 지냈다고 합니다.


장쉐량과 쑹메이링의 인연은 1925년경 상하이 주재 미국영사관 칵테일 파티에서 생겨나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였던 것이 장쉐량은 당시 이미 결혼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3년뒤에 다시 만난 쑹메이링은 어느새 장제스의 부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였구요.


그런데 장쉐량은 당시 최고의 바람둥이 였음에도 불구하고 쑹메이링 만큼은 평생 잊을 수가 없었던 여인이였나 봅니다.

시안사건 당시 장제스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으나 장쉐량이 사랑했던 여인이였던 쑹메이링을 차마 과부로 만들 수가 없어서 장제스를 살려 줬다고 하니 말입니다.


장제스를 살려준 뒤로 그는 장쉐량은 장제스를 풀어주고 제 발로 군사법정에 서게 되었고 이후 1990년까지 무려 55년이나 연금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가 연금생활에서 풀려난 나이는 이미 90세...

사랑 때문에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가택연금을 당한체로 살았던 장쉐량 만약 그가 쑹메이링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아마도 중화민국이 지금 아얘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장쉐량이 그토록 오랜시간 가택연금을 받는 일도 아마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장쉐량의 쑹메이링을 향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쑹메이링은 권력을 사랑한 인물로 역사에 남아 있기에 장쉐량을 정말 좋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권력에 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를 이용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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