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사

교황청 비밀문서 공개와 교황 비오11세, 비오 12세의 나치협조 의혹설

명가공인 2014. 9. 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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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중에서도 현재까지도 가장 큰 논란이 일고 있는 교황이 있다고 하면 비오 11세와 12세일 듯 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03년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명에 의해 바티칸 비밀문서 보관소의 문이 열려 다시금 나치와 교황청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다시 재 점화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바티칸 비밀문서 보관소에 있는 문서들은 작성한 지 80년이 지난 다음에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나  교황 비오12세의 나치협조 의혹설에 관한 것을 밝히고자 하는 목적과 더불어 유대인과의 화해를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당시 교황이였던 요한 바오로2세 의 뜻에 따라 예정보다 일찍 그 문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 교황 비오11세 비오12세 정말 히틀러의 교황이였나?


교황에 대한 나치 협조의혹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자면 당시 교황 비오 11세(재위 1922~39)와 비오 12세(1939~58)는 국가사회주의의 구호에 매료되거나  나치가 내건 반유대주의에 사로잡혀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박해하는 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태인들의 박해를 선동하고 조장하기까지 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는데요.

교황 비오 11세


지난 2003년도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자면 교황청에서 유태인들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나치에게 구체적으로 협조를 했다고 하는 근거가 될만한 문서는 발견이 되지는 않았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교황청이 나치의 집권을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발견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3년도에 교황청 비밀문서 공개를 통해서 카톨릭 역사상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은 확인이 되어서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었는데요.


그건 바로 비오11세가 히틀러가 제안을 한 정교협약을 체결한 것입니다.

1933년 1월 30일 독일의 총리가 된 아돌프 히틀러가 정교 협약을 맺자는 제의를 하자 비오 11세는 이를 수락하였고 당시 정교협약에 관한 교섭은 훗날 교황 비오 12세가 된 에우제니오 파첼리 추기경이 맡았었던 것입니다.


즉 바티칸 교황청이 나치정권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 했다고 하는 것은 나치정권을 인정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또한 비오 11세때 교황청은 히틀러 뿐만 아니라 스탈린과 무솔리니, 히틀러와 차례로 우호조약을 체결했고도 하는데요. 당시 교황은 위협적인 세력들에 대한 대항이 아닌 협약과 인정을 통해서 지나치게 바티칸을 지키기에만 급급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교황 비오11세 이후 비오12세는 공공연히 나치를 비판하고 유대인 난민을 구제하기 위해서 적극 노력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당시 잘못 끼워진 단추 하나로 인한 오명은 역사에 그대로 남아 있기에 정교협약을 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논란의 오명을 훗날에도 다 씻어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집니다.

종교가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니까요.

교황 비오 12세


여튼 과거 그런 흑역사와 같은 논란을 모두 씻어내기 위해서는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 주셔야 할 일이 더욱더 많은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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