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사

광해군 드라마 왕의얼굴 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게 될까?

명가공인 2014. 11. 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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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역사에서 광해군 시대를 전후로 해서 참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 났기에 광해군의 이야기는 여러편의 드라마나 영화로 참 많이도 만들어 지는 듯 합니다.

이번에는 KBS 왕의얼굴 이라고 하는 드라마를 통해서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동안 세자를 지내며 역경을 이겨낸 광해군의 이야기를 관상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재미나게 풀어 보려고 하고 있네요. 관상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얼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상(손의 모양), 족상(발의모양)까지도 보고 더불어 자세나 주변의 기운까지도 관찰을 한다고 하더군요.


조선의 임금이라면 비단 광해군 뿐만 아니라 다른 임금들도 사람의 관상을 보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익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에 역모와 살해등의 위협을 많이 받다 보니 사람을 가리는 것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겼을 테니 말이죠.


 ■ 드라마 단골인물 광해군 그리고 왕의얼굴


ⓒ KBS 드라마 왕의얼굴


▷ 왕의얼굴 그리고 광해군

드라마에서는 무려 16년간 세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온갖 위협을 받았던 광해군이 그 오랜시간을 견딜 수가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를 관상을 볼 수가 있었다는 것에 관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 듯 합니다.

즉 광해군은 사람을 잘 가릴 줄 알아서 그 오랜시간을 잘 견딜 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겠죠.

ⓒ KBS 드라마 왕의얼굴 광해군역 서인국


실제로 역사속에 기록된 광해군은 인재를 잘 알아보긴 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광해군의 말년은 역시 사람으로 인해서 폐위를 당하고 추락을 했었기에 광해군의 관상을 보는 능력은 집권말년에는 좀 흐려졌었던 모양입니다.

ⓒ KBS 드라마 왕의얼굴 광해군역 서인국


▷ 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광해군 어떤 사람이였을까?

광해군을 직접적으로 묘사했던 드라마 중 가장 최근의 드라마라고 한다면 다정다감한 왕세자의 모습으로 등장을 했었던 불의여신 정이가 먼저 생각이 납니다.


왕세자라는 신분과는 달리 천한 신분의 여자 도공을 다정다감하게 대하며 이끌어 주는 모습으로 묘사가 되죠.

'광해 왕이된 남자' 라고 하는 영화에서 묘사되는 광해군은 정적들의 살해 위협을 피하기 위해 치밀한 모습을 보이는 다소 무서운 왕의 모습으로 등장을 합니다.


이 외에도 광해군이 살았던 시대에는 불세출의 영웅인 이순신, 그리고 동의보감을 만들어낸 허준 등이 살았던 시기이기에 종종 광해군이 등장을 하기도 하구요.


일단 광해군이라고 하는 인물은 한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총알 받이에서 임금까지 오른 대단한 사람임은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조선시대의 가장 치욕적인 사건중의 하나를 말하라고 하면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의 아버지였던 선조가 도성을 버리고 평양으로 피난을 갔던 사건일 것입니다.

ⓒ KBS 드라마 왕의얼굴 선조 역 이성재


선조는 원래는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을 할 생각은 없었다고 합니다.

후궁 인빈 김씨의 아들인 신성군을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신성군은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서 사망을 하게 되었고 밀어닥치는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서 도성을 버리고 도망치자니 누군가 도성을 지위를 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죠.

선조는 당시 평양성으로 도망쳤다가 결국은 요동까지 망명을 하면서 조선을 광해군에게 지키게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그냥 한마디로 표현하면 총알받이로 광해군을 만들었던 것이죠.


그런데 광해군은 생각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집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등 전란을 잘 수습해 나가며 왕세자로서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져나가게 됩니다.  선조는 그런 광해군을 칭찬하고 격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경계를 했던 것이구요.

총알받이로 전쟁터에 남겨 뒀더니 불사신 처럼 살아나서 오히려 왕권까지 위협하는 인물로 성장을 했던 것이죠.


임진왜란이 끝나고난 이후 선조의 계비였던 인목왕후가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게 되자 선조는 다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만들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뜻을 이루지는 못하고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608년 갑작스럽게 사망을 하고 맙니다.

아버지 잘못 만나서 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이죠.

ⓒ KBS 드라마 왕의얼굴


하지만 광해군은 친형인 임해군을 교동으로 유배를 보내 사사를 하고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이복동생인 영창대군마저도 사사를 하여 폐륜의 아이콘으로 불리우다가 결국 인조반정으로 폐위가 되어 1608~1625년까지의 짦은 왕의 재위기간을 마무리하고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천수를 누리며 살다가 67세의 나이로 사망을 하게 됩니다. 광해군이 폐륜의 아이콘으로 오랜 기간 역사에서 지탄을 받아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참 다양하게도 다시 광해군에 대한 평가가 재 해석이 되고 있는 듯 합니다.


광해군의 아버지였던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에게 나라를 맡기고 요동까지 도망치는 치욕의 역사를 남겼고 반정으로 왕이 되었던 인조는 친명배금정책으로 인해서 청나라의 침략을 받아 결국은 청나라 황제인 홍타이지 앞에서 세번 절할 때 마다 세번찍 땅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례를 했던 치욕을 보였던 역사가 있습니다.


차라리 실리외교를 펼쳤던 광해군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 부터 왕이 되어 있었더라면 그리고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에는 어쩌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과 같은 조선 최대의 전란과 치욕적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군요.

그나저나 워낙에 사극을 좋아하는 터라 이제 막 시작이 된 KBS 왕의얼굴 이라는 드라마가 참 기대가 많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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