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사

의안군의 죽음 그리고 이성계 함흥차사는 사실일까?

명가공인 2014. 6. 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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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성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한 조선이란 국가를 건설건설한 시조가 되었으나 권력의 야욕에 눈이먼 자식들 간의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는 참담함을 목격한 비운의 왕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335년 11월에 태어나 1408년 6월 27일 조선의 1대 왕이 운명이 달리하는 그날까지 그가 보위에 오른 기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습니다.

1392년 8월 5일 부터 1398년까지 재위를 하긴 하였으나 하지만 보위에 올랐던 기간보다도 더 긴 세월을 자식들간의 권력다툼에 분쟁을 눈으로 봐야만 했기 때문이죠.


 ■ 1차 조선 왕자의 난과 의안군의 죽음


조선의 2대 왕은 이성계가 총애를 하던 여덟째 아들인 의안군이 세자로 책봉이 되어서 다음 보위를 이을 예정이였습니다.

조선의 최고의 개국공신이라고 불리우던 정도전 역시도 의안군을 가르쳐서 조선 왕도정치의 꿈을 더욱더 곤고히 펼쳐나가고자 하였죠.

KBS사극 정도전을 보면 이방원이 자신을 세자로 책봉이 되도록 해 달라고 정도전에게 무릎까지 꿇는 장면이 보이긴 합니다만 이는 역사적인 사실과는 조금 거리가 먼듯 하긴 합니다.

이는 정도전의 의지였다기 보다는 태조 이성계의 의지로 인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합니다.

ⓒ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의안군 역)


그런데 이런 세자책봉의 문제는 결국 1차 조선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데 불씨가 되게 됩니다.

이후 정도전이 요동정벌 계획을 세우고자 군사를 모은것이 화근이 되어 세자인 의안군을 지키고자 이방원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게 됩니다.

이에 이방원은 1차 조선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제거하고 이때 의안군까지 이방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죠.

이때에 의안군 이방석 뿐만 아니라 동복형제인 무안군 이방번 까지도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 KBS대하사극 정도전


이때에도 이방원은 즉시 세자의 자리에는 오르질 않습니다.

보위 계승을 위해서 형제를 죽였다는 것을 면피하기 위해서 세력이 없었던 허수아비 역할을 해 줄 이방과에게 세자의 자리를 일단은 양보를 해 두고 후일을 기약했던 것이죠.


이후 이방원은 2차 왕자의 난을 거쳐서 조선의 3번째 임금이였던 태종이 됩니다.


 ■ 이성계와 함흥차사


1차 조선 왕자의 난으로 권력의 무상함을 느낀 이성계는 보위를 둘째 아들인 이방과(정종)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떠나게 된 것이죠.

이후 왕권을 노린 태조의 4째 아들이자 이방원과의 동복 형제인 이방간이 2차 조선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 이 난은 결국 이방원에 의해서 제압을 당하게 되고 이를 통해 권력의 입지를 다진 이방원은 1400년 세자에 오른 후 같은해에 조선 3대 임금인 태종에 즉위를 하게 되는 것이죠.

ⓒ KBS사극 정도전, 이방원역 안재모


이 때 생겨난 말이 함흥차사 인데요.

상왕이였던 아버지를 다시 한양으로 모시기 위해서 태종이 함흥으로 차사를 보냈으나 그곳으로 갔던 차사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에서 비롯된 말이였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였다고 합니다.


1차 조선 왕자의 난을 일으켜 두명의 왕자를 죽인 이방원을 이성계가 오랜 시간 용서를 하지 않아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백성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 일 뿐 실제로 이성계를 한양으로 다시 모셔오기 위해서 태종이 보냈던 차사들은 단 한명도 죽지 않고 모두 살아서 돌아 왔다고 하는 군요.

우리가 흔히 들었던 함흥차사라고 하는 한번 가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서 형제를 죽게 만든 이방원에 대한 백성들이 만들어 낸 야사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이성계 어진


실제 역사에서는 1401년 4월 이성계가 이방원이 보냈던 차사인 성석린의 청을 받아서 한양으로 환궁을 하였었고 같은해 11월 한양을 떠났다가 1402년에 다시 한양으로 환궁을 한 것을 보면 이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함흥차사의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비록 왕자의 난으로 두명의 자식이 죽기는 하였으나 남은 자식이였던 이방원의 청을 이성계도 쉽게 뿌리칠 수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여튼 조선 건국의 역사는 피로 물들었던 태종을 넘어서 다음 임금이였던 성군이자 태평성대를 이루어낸 세종대왕때에 와서야 안정된 모습을 갖추게 된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태종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위에 올랐더라고 하면 세종대왕과 같은 조선의 위대한 임금이 탄생할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권력이라는 것이 형제를 죽일 수 있을 만큼 무서운 것이라고 하면 저는 그런 권력은 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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