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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성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명가공인 2014. 5. 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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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페이스북(facebook)이 세계최고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전세계인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기는 하지만 페이스북의 역사를 살펴보면 마크 저커버그가 2003년 10월 28일에 페이스 매시(Face mash)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2004년 2월 자신이 다니던 하버드대학교를 중퇴를 하고 하버드대 컴퓨터 학과 친구들이었던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 에두알도 사버린(Eduardo Saverin), 크리스 휴즈(Chris Hughes)와 함께 공동창업을 하여 페이스북을 만들 때만 하더라도 사실 우리나라 싸이월드와 같은 서비스에 비해서 오히려 뒤쳐지는 서비스였다고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페이스북이 왜 갑작스런 성장을 하게 되었을가요?


 ■ 국내 SNS서비스를 대표하는 싸이월드 그 추락의 원인은 무엇 이었을까?


사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역사를 보면 우리나라 싸이월드가 페이스북(facebook)에 비해서는 한창 앞선 서비스였다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싸이월드는 1999년도에 출발을 하여 이미 페이스북을 창업할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큰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였다고 봐야 할테니까요.


아래 설명은 싸이월드를 비롯하여 이통사 시장까지 우리나라 콘텐츠 플랫폼 시장의 추락까지도 함께 연계를 해서 설명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국내 SNS의 최강자였던 싸이월드

싸이월드가 한창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것은 바로 미니홈피라고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남들의 모습을 훔쳐보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가상의 공간에서 일촌이 많을 수록 뭔가 있어 보인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인맥쌓기에 열을 올리고 또한 그런 것들을 위해서 스킨을 바꾸고 배경음악을 바꾸는 것에 사람들은 열광을 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2. 폐쇄적인 콘텐츠 운영의 한계

싸이월드의 추락은 비단 싸이월드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에 있어서의 폐쇄적 운영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이전인 피쳐폰 시절에 SKT의 대표적 모바일 서비스인 NATE, KTF의 매직앤, LG텔레콤의 ez-i와 같은 곳의 모바일 콘텐츠 매출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만한 매출을 자랑하고 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통사들은 그러한 서비스채널을 움켜쥔 채로 개방형태를 취한 것이 아니라 철저한 폐쇄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을 때였죠.


당시 이통사에 어떤 서비스를 입점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사업제안서를 작성을 하고 그 사업제안서가 이통사 담당자 눈에 들어서 통과가 되어야 하고 통과가 되더라고 해도 복잡한 이통사 규약을 거쳐서 개발을 진행해야 했었고 아울러 콘텐츠 매출의 상당 부분을 이통사가 가져가게 되는 구조여서 콘텐츠 공급사들이나 개발사들의 수익구조는 취약할 수 밖에는 없었던 구조였었습니다.


그나마 이통사에 제안서를 넣고 콘텐츠공급을 할 수 있었던 업체들은 근근히 먹고 살 수라도 있었지만 그나마도 못한 업체들은 좋은 서비스나 기술을 그대로 사장 시키기가 일쑤였었습니다.


비단 이런 형식의 운영은 이통사 뿐만 아니라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가 되었었던 싸이월드 역시도 마찬가지였구요.


3. 플랫폼의 개방과 국내 콘텐츠 플랫폼의 몰락

2010년 이후로 이통사의 콘텐츠 플랫폼은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걷게 되죠.

우선 국내 개발자들은 제안서도 필요 없고 이통사 담당자도 몰라도 되는 애플스토어나 2만원 조금 넘게 내고 개발자 계정을 취득해서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마음껏 앱을 개발해서 올릴 수 있는 안드로이드 마켓으로 점차 이동을 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이통사 콘텐츠 플랫폼은 사실상 완전히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물론 각 이통사들마다 앱관련 플렛폼을 제공을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는 없다고 봐야겠죠.


4. 페이스북 개방의 시작과 싸이월드의 추락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싸이월드도 마찬가지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부서의 담당자를 알아야 하고 제안서를 써야하고 업체 담당자와 미팅을 거쳐서 개발계획을 세워서 연동을 시켜야 하는 복잡한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싸이월드가 가질 수 있는 콘텐츠와 서비스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는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출발을 한 페이스북은 2007년 5월에 F8 플랫폼 이라고 하는 API를 개발해 공개를 함으로써 전세계 개발자 누구라도 페이스북과 연동이 가능한 오픈 플랫폼 정책을 도입하게 됩니다.

이후 전세계 100만명이 넘는 개발자들이 페이스북과 연동이 된 각종 응용프로그램들을 수십만개씩 개발을 해서 자발적인 제공을 하게 되면서 부터 페이스북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게 됩니다.


별거 아니라 생각을 했었던 페이스북(facebook)을 들어가 보니 기존 싸이월드에서 봐왔던 친구사진 음악듣기 동영상 보기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콘텐츠와 서비스 그리고 국내에 머물렀던 인맥의 한계를 넘어서는 서비스에 사람들은 열광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죠.


결국 개방과 공유의 전략이 적절하게 잘 맞물리면서 페이스북은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였고 현재는 전세계 13억명에 가까운 사용자를 확보한 세계 최대의 소셜네트워크로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국내 IT기업들이나 혹은 대기업들도 이런 부분들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고 반성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나 플랫폼 사업은 개발자들이나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사용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을 제공을 해야하지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필터링을 하려고 할 경우에는 개방과 공유를 지향하는 서비스들에게는 경쟁 자체가 안된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봤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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